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rihydroxybenzene, 이하 124-THB) 새치 염모 샴푸의 유전독성 논란이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 논란이 지난2021년 하반기에 발생했지만 한국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들은 함구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국회와 소비자단체들이 토론회를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미래소비자행동(상임대표 조윤미)이 처음으로 장문의 '124-THB 성명서'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성명서는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 산하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 (Scientific Committee on Consumer Safety, SCCS)는 올해 6월3일부터 124_THB 성분을 판매금지 조치했다. 또한 아세안 10개국(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미얀마)은 올해 1월 아세안화장품 지침에 124_THB를 배합금지 성분으로 수록하였으며, 5월28일 124_THB성분 함유 제품의 판매금지 조치를 시작했다.
1,2,4_트리하이드록시벤젠(Trihydroxybenzene, 이하 124_THB)은 화학물질 자체로는 색이 없으나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서 검은색을 보이는 물질로 주로 염모제에 사용되는 물질이다. 우리나라 화장품법은 ‘화장품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사용금지 또는 배합한도 성분을 지정하여 고시하고 있으며(네가티브리스트 방식) 색소의 경우에는 사용가능한 성분을 고시하고 있다(포지티브리스트 방식).
현재 사용금지원료 목록에는 ▲ 1-메칠-2,4,5-트리하이드록시벤젠 및 그 염류 ▲ 1,3,5-트리하이드록시벤젠(플로로글루시놀) 및 그 염류는 포함되어 있으나 124_THB는 빠져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24_THB는 화장품에 사용할 수 있는 색소 성분에도 빠져있어 화장품원료로는 사용 가능하나 색소로는 사용 불가능하다. 여전히 124_THB는 사용금지 성분에 등재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은 최근 EU와 아세안의 판매금지조치를 보면서 124_THB가 들어있는 제품을 계속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EC산하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 (SCCS)의 124_THB에 대한 검토보고서는 EC 전문가 자문 그룹 중 하나인 “화장품워킹그룹”에서 담당하여 지금부터 41년 전인 1981년부터 총 6회 보고서가 나온 바 있다. 가장 최근 나온 6판 보고서는 ‘저스트포맨(Just For Men)’이라는 브랜드의 염색약을 판매하는 미국회사 ‘COBME’의 재검토 요청에 따른 것이다. 재검토 요청은 2017년 10월에 이루어졌으며, 2017년 12월13일부터 재검토가 시작되었다. 6개월 후인 2018년 6월 보고서 초안을 마련하였으며, 2018년 7월2일부터 9월10일까지 8주간 이의신청기간을 거쳐 2019년 6월21일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 총회를 통해 최종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재검토가 시작된 시점부터 약 1년 6개월간 논의된 결과이다.
6판 보고서의 주 이슈는 ▲ 2.5% 124_THB 단독사용 염모제가 허용될 수 있는가? ▲0.7% 124_THB삼푸는 허용될 수 있는가? ▲ 124_THB화장품은 허용될 수 있는가? 이 세 가지이다. 총 18명의 과학자가 1년6개월간 조사하여 내린 보고서의 결론은 “124_THB는 자연산화 염색성분으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도 유전독성의 가능성이 있어서 안전하지 않다”이다. SCCS는 “반응하지 않은 124_THB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의 세미퀴논(semi-quinone)에 소비자가 노출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포 내에서 과산화수소를 생성시킬 위험이 있어서 DNA 부가물이 발생하여 잠재적인 유전독성 가능성이 있으며 의뢰한 기업이 제출한 서류나 기존 다른 문헌에서 이러한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라며 불가판정을 내렸다. 샴푸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2020년 11월12일 124_THB는 유럽에서 사용금지가 확정됐다. 해당원료를 사용한 제품은 2021년 9월부터 출시금지, 2022년 6월3일부터 판매금지되었다. 유럽의 안전규제는 매우 엄격하고 원칙적이며, 자국산업 보호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강력한 규제를 하는 경우가 있어 무조건 EU의 규제를 따라할 필요는 없으나 전문가, 과학자들의 위해평가에 의해 내려진 안전성 강화 조치는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대응, 2020년 11월 국내 위해평가보고서 제출 후에도 124_THB를 사용금지성분 등재하지 않아!
EC산하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에서 124_THB에 대한 위해성 평가가 수행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는 2019년 4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24_THB에 대한 위해평가 연구사업을 시행했다. 식약처의 정보입수와 초기대응은 빠르고 훌륭했다. 국내 과학자들에 의한 위해평가결과 보고서는 2020년 11월에 식약처에 보고되었는데 “피부감작성 및 약한피부 자극성 물질로 분류되고 잠재적인 유전독성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SCCS 보고서와 동일했다.
2020년 11월에 위해평가결과 보고서 제출 후 바로 124_THB를 우리나라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3조(사용할 수 없는 원료) 화장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에 등재하였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아쉽게도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화장품업계에서 124_THB에 관심을 갖고 사용을 검토했던 업체의 경우 유럽에서 사용금지 되었다는 것을 이미 다 아는 상황이며, 잠재적 유전독성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 보고서를 통해 지적되어 온 바 있어 124_THB를 사용한 제품이 당시 전혀 없었던 상태였으며, 이같은 상황에서 124_THB를 사용한 제품이 출시될 가능성이 매우 낮을것으로 보고 서두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124_THB를 사용한 제품이 2021년 8월 국내에 출시됐다. 식약처는 부랴부랴 2021년 12월9일 독성·위해평가·화학분야 전문가, 피부과 전문의, 화장품업계가 참여하는 전문가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날 회의에서 위해평가를 근거로 “사전예방적 안전관리차원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2021년 12월23일 규제에 대한 영향분석을 진행하여 124_THB를 금지시킬 경우 약15억원 가량의 원재료 폐기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화장품을 소비하는 국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예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정, 2021년 12월27일 124_THB를 화장품에 사용할 수 없는 원료로 지정하는 행정고시가 공고되었으며 2022년 1월 17일까지 의견개진 기간을 가졌다.
이에 124_THB 성분을 넣어 제품을 판매하던 기업 측에서 이의제기가 있었으나 2022년 1월18일 2차 전문가위원회 회의에서 124_THB는 물질 자체에 잠재적 유전독성이 우려되는 성분이므로 샴푸를 포함하여 금지가 필요하며, 유전독성에 대한 기존 자료가 충분하므로 원안대로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따라 2022년 2월 26일 최종 사용금지성분에 등재하는 고시개정이 결정됐다.
■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화학물질 안전성에 대한 전문성도 없는 위원들이 모여 단 한 차례 회의로 어처구니없는 결론 내
이후 2022년 3월25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개최되어 고시개정 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됐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안전성 전문가로 구성된 회의체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안전에 관한 결정은 안전행정 전문부처가 권고하는 대로 결정하거나 안전이슈를 다루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95차 규제개혁위원회는 단 한 차례 회의를 통해 황당하게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화장품 원료사용기준 강화”안에 대해 “개정안에 사용금지 원료로 지정된 1,2,4THB를 제외하고 해당기업과 함께 식약처가 객관적인 평가방안을 마련하여 2년6개월 동안 추가적인 위해검증을 통해 사용금지여부를 최종 결정”하라는 개선권고를 내렸다.
EU의 수많은 과학자나 전문가와 국내 위해평가 전문가, 의사가 여러 차례 회의와 자료검토를 통해 국민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내린 결론을 안전 관련 전문성도 없는 규제개혁위원회가 단 한 차례 회의를 통해 무산시킨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이런 조치는 논란이 있는 성분을 사용한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자그마치 2년 6개월 동안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가 해당 제품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손해를 볼 기업은 딱하게 보면서 잠재적 유전독성에 노출될 소비자는 보이지도 않았나 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안전성 논란을 일으킨 기업과 국민 안전을 위한 규제를 담당하는 식약처가 함께 협력하여 위해검증을 다시 하라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이다. 안전에 대한 규제는 기업이나 산업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독립적인 과학자들의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 어떠한 혁신적 기술도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다. 이미 식약처가 ‘인체적용제품의 위해성평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위해평가를 완료한 원료에 대해 “기업과 협력하여 위해평가를 다시 하라”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는 식약처의 권위와 산업의 질서를 뒤흔들고 국가의 안전관리 체계를 파괴하는 황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 식약처는 사용금지성분 고시개정을 다시 추진하고 유예기간 없는 즉각적인 판매금지 조치 내려야! 또한 소비자안전을 위한 경고문구 삽입, 소비자를 위한 안전성 정보 제공, 제품사용과 관련한 소비자피해실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절대적인 피해자는 약자인 소비자뿐이다. 소비자는 기업과 정부를 믿고 비싼 돈을 주고 제품을 사서 사용한다.
문제는 해당 기업의 안전에 대한 안일함과 도덕성이다. 124_THB가 유럽연합에서 6차 안전성 재검토가 진행되어 사용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은 화장품 기업이라면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다. 또 자료 조사를 꼼꼼히 했다면 식약처 위해평가 결과 EU의 SCCS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은 법의 빈틈을 활용하여 2021년 8월에 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소비자안전 이슈가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제품을 출시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 해당 기업이 자체 연구를 충분히 하여 안전을 확신한 상태에서 제품을 출시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연구소에 의뢰하여 만든 단순한 시험 수준의 자료가 아니라 장기간 일상적 노출에 따른 두피 흡수, 손 흡수에 따른 만성독성, 유전독성 여부에 대해 독립적으로 실시한 명확한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현재 해당 기업은 안전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SCCS 보고서에 대한 공개 반박, 식약처가 허용한 염모제 성분에 대한 비방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식약처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작은 기업을 죽이려 한다는 식의 프레임을 만들어 활발한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소비자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국내 화장품법과 규제 당국을 존중할 생각도 없고 어떻게든 법의 빈틈을 활용하여 장사를 하겠다는 속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24_THB 사용금지 성분 등재를 위한 고시개정을 즉각 다시 추진해야 하며, 소비자안전을 위한 경고문구 삽입, 소비자를 위한 안전성 정보 제공, 제품사용과 관련한 소비자피해실태 등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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